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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찻잔을 뒤집어 봅시다 - 1. 로얄코펜하겐 블루팔메테
    당근냥,/커피 마셔요. 2020. 6. 10. 17:36

      안녕하세요, 당근냥입니다 :)



      하루하루는 참 긴 것 같은데 블로그의 지난 글을 보니 벌써 일주일이 훅 지나갔네요. 월요일 아침 운동을 할 때 너무 덥다 했더니 어제오늘은 갑자기 여름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막내가 요청했던 에그타르트가 어젯밤 세 번째 시도만에 성공을 해서 '에그타르트 만들기'를 쓰려고 블로그를 켰는데요, 무려 세 번이나 시도해서 사진이... 일단 가볍게 손 풀기(?)로 막내에게 받은 생일 선물을 풀어볼까 합니다. 


      별거 아닌 일에도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슬픔을 느낄 수 있었던 중학생 시절 즈음. 제 영혼을 뒤흔들었던 만화책에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다도(茶道)에는 말야, 일생에 한 번뿐인 인연이라는 말이 있어."  


      당연히 그 대사의 주인공이 불순한 의도로 이 대사를 남발하고 다니는 것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저는 '운명의 상대' 또는 '인연'이 누구일지 궁금하고 또 기다렸는데 꼭 맞는 단어를 찾은 느낌이었어요. 

      

      いちごいちえ(一期一會, 일기일회), serendipity(세렌디피티),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 The Decisive moment(앙리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이런 단어들은 같은 맥락에서 수집해 놓은 것들입니다. 

      어쨌든, 그 만화책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인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다도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예를 갖춰 하는 다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아하게 앉아서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렸던 것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거실이 없는 집에서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동경이나 소망에 대해 말을 하면 저희 엄마나 동네 이모들이 반 장난처럼 비웃는 말씀 - 다도오~? 다도같은 소리 하고 있네. - 을 하셨었는데, 제가 엄마나 이모들의 나이가 되어가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다들 열심히 사시느라 돈도 마음도 여유가 없는 자신에 대한 자조섞인 비웃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처음으로 찻잔을 샀을 때는 친구들과 인사동까지 찾아갈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어서였는데, (막내또래의 친구들은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는다거나 인터넷 쇼핑몰이 없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제가 찻잔을 사기 위한 장소로 겨우 생각해 낸 것이었습니다.

      인사동에 도자기 공방들이 있긴 있었습니다. 비싸서 그렇지... 제가 가진 돈이 3만원 정도, 4만원이 안되었을 거예요. 비슷비슷한 도자기 상점들을 구경하던 중 한 상점에서 제 예산을 듣더니 눈에 띄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찻잔도 아니고 무려 다기 세트를 추천해주었습니다. 무광의 하얀 도자기에 분홍색 작은 꽃도 그려져 있고, 귀엽고 예쁘더라고요. 그런데 도자기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찻주전자(다관)의 형태가 좀 틀어져서 '이런 건 드라마에서 보면 가마에서 나오자마자 던져서 깨던데...'라고 생각했죠. 저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지 가게 주인이 그 돈으로는 여기서 아무것도 못 산다면서 학생이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선심 쓰듯이 팔아주겠다고 합니다. 여러 가게들을 둘러보면서 안 그래도 위축되어있었던 터라 이 정도라도 정 붙이고 쓰면 되겠지 해서 조금은 찜찜한채로 사들고 나왔어요. 

      그런데, 그 찜찜함이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뒤로 인사동을 몇 번 가긴 했는데, 물건은 안 사져요. 이 글을 쓰면서 다기세트 가격을 검색해보니 울컥하는군요. 


       "애한테 꼭 그랬어야만 했냐!!!!" 


      수학여행 가서 부모님 선물 사겠다고 국적도 불분명한 소주잔이랑 웬 옥돌을 사왔던 기억. 첫 알바비 싸들고 미니컴포넌트 사러 가서 눈탱이 맞은 기억(엄마가 나중에 아시고 항의해서 일부 환불). 첫 해외여행에서 선물 사겠다고 뭔가를 잔뜩 샀는데 집에 와서 풀어보니 허섭쓰레기가 한가득이었던 기억. 아.... 나의 호구의 역사. 


      뭐, 그러면서 경험치가 쌓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일찍이 저렇게 당해 놓은 덕에 스물다섯살 친구들과 했던 자전거 전국일주 중에 들른 제주도 민속촌에서 말뼈가루는 꿋꿋이 안 살 수 있었습니다. ㅎㅎㅎㅎㅎ

      공방 도자기에 대한 관심은 인사동 사건 이후로 완전히 사그라들었지만 그 뒤로는 소소하게 브랜드 찻잔 들을 사기도 하고 예쁜 찻잔을 쓰는 카페에 가게 되면 찻잔 밑 부분을 살짝 뒤집어 보고 브랜드를 기억해두었다가 찾아서 사기도 했습니다.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모아왔는데, 작년에 일본 불매운동을 시작으로 뭔가 각성(?)하면서 요샌 좀 시들해졌는데요, 막내가 생일선물을 얼른 고르라고 독촉해서 오랜만에 적당한 것으로 골라봤습니다. 




    이거요. 



      드디어, 기다리던 택배 알림 문자. 



      푸른색 핸드페인팅(Blue fluted, 블루 플루티드)으로 유명한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은 240년의 역사를 가진 덴마크 왕실의 도자기 브랜드......라고 합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로얄 코펜하겐 공식 온라인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 굉장히 동양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원조는 중국의 도자기였다고 하네요. 그 옛날 장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로얄 코펜하겐은 가볍게 프린세스 라인으로만 모아볼까 했는데요, 물고기 비늘모양의 페인팅이 접시가 커지니까 좀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팔메테 라인을 구경해 보기로 했습니다. 




      로얄코펜하겐의 파손보증제도라는 것인데, 사용 중에 파손되면 2년이내에 무상으로 교환 해줍니다.




      블루 팔메테(Blue Palmette), 팔메트는 종려나무 잎을 닮은 길고 가느다란 잎사귀 모양을 본떠 부채꼴로 꽃잎을 배치한 무늬라고 합니다. 





      컵과 소서(saucer, 컵받침) 두 세트와 작은 접시 두 개를 묶어서 판매하는 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사진만 보고 골랐더니 작은 접시가 지름 10cm짜리(아래쪽 두 개)... 아니 이걸 접시라고... 이런 건 간장종지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찻잔은 120mL짜리... 아, 그렇죠. 커피잔에는 에스프레소 잔도 있는 법이죠. 그런데 이거 디자인도 그렇고 딱 정종 따라 마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막내가 맘에 안 들면 환불하고 다른 것으로 고르라고 했지만 이 사이즈 잔은 가지고 있는게 없기도 하고 작은 잔과 접시가 귀여워서 그냥 쓰기로 했어요.  




      그릇 바닥에는 페인팅을 한 사람의 시그니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Made in Thailand' 정말 깨지 않나요? '덴마크', '명품' 도자기라며!! 덴마크 장인들은 다 어디 가고 태국 장인들이 만든단 말입니까. 사실 이전에 구매했던 프린세스 라인의 몇 가지 제품들도 전부 태국 생산이더라고요. 백번 양보해서 프린트된 도자기야 생산비 절감을 위해 해외 생산을 할 수 있다고 쳐도 핸드페인팅 제품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려서 판매한다면 이걸 덴마크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풀레이스(Blue Fluted Full lace) 라인의 경우에 접시 하나에 50만원이 훌쩍 넘는 것들도 많은데 태국 도자기를 그정도 돈을 주고 사는 건 좀... 




      그래도 역시 핸드페인팅 특유의 느낌이 참 예쁩니다.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청금석), 울트라 마린 블루도 참 예쁩니다. 




      이게 문제의 컵받침인데요, 컵받침이라고 하기엔 잔이 들어맞는 홈이 없습니다. 쟁반에 올렸다가 주르륵 미끄러져서 파삭 깨질 것 같아요.




      프린세스 라인의 홍차잔 받침이에요, 딱 봐도 이거 찻잔 받침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접시 중앙에 홈이 있죠? 이상해서 문의해봤더니 제가 산 세트는 소서를 그냥 접시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원래 홈이 없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정종잔?




      네스프레소 머신 110mL 룽고 한 잔에 딱 맞는 사이즈입니다. 




      이번 기회에 에스프레소를 시작해 볼까봐요. 




      지름 10cm짜리 작은 접시는 에그타르트가 하나 올라가는 사이즈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소꿉놀이하는 기분이 드는 귀여운 찻잔 세트네요. 막내야, 고마워! 



      에그타르트 만들기는... 오후에 쓸 예정인데, 다쓰면 여기에 다시 링크할게요. 

      행복한 금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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